3만원의 여유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지갑엔 얼마가 들어있는지요.
현금 서비스가 가능한 신용카드도 들어있을테고,
또 급하게 현찰이 필요할 경우 쓰기 위한 만원짜리 몇장 정도는 지니고 다니시겠지요.

누군가 이런말을 하더군요.
내 지갑에 천원 한장 들어있으면 세상에 내 재산은 천원이 전부지만
내 지갑이 텅 비어있으면 세상 모두가 내것이라고....
왠 궤변인가 싶지만 사실 그말이 맞는듯 합니다.


살아가면서
내가 사는 무게는 세상 돌아가는 전부의 얼마를 차지하고 있을까.
당장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대도 전혀 삐그덕 거리지 않게 세상이 돌아간다면
나란 존재는 얼마나 허무한 존재일까.
그것이 싫어 난
내 지갑에 돈을 채우고 내 카드의 신용 한도를 늘리고
내 통장의 잔고를 늘리고
나를 아쉬워 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더 늘리고........
그리고 그것을 삶의 당연한 한 모습으로 생각하고 그 이외의 것들은 등한시 해버리는....


예쁜 따님을 가진 한 아저씨 얘길 해보렵니다.
우리 반장님이지요.
반장님 따님이 겨울방학때 알바를 해서 월급을 타더니 반장님 속옷을 사 드렸습니다.
엄마에게 사랑 받으시라고 좀 야시꾸리한 속옷이었더랍니다.
그리고 덤으로
남은 돈으로 용돈 하시라고 3만원을 드렸답니다.

이분 가관입니다.
한달 30일중에 20일 이상은 그 야시꾸리한 속옷을 입고 다니십니다.
맨날 아침 저녁으로 탈의실에서 입이 잔뜩 벌어진채로 옷을 갈아입고 계시는
우리 반장님 얼굴을 보는건 이젠 익숙해졌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습니다.
그리고 누가 쳐다보면 그 속옷에 관한 설명을 해주시는걸 잊으시지 않습니다.
우리 딸놈이 말이지...에서 시작해서
이놈이 남자친구가 생기더니........까지
듣는 사람이 괜히 쳐다봤네 라는 생각이 들도록 줄기차게 그리고 귀가 닳토록
몇번을 들었던 얘길 다시 풀어놓으십니다.
그리고 그런 얘길 풀어놓으실때의 반장님 얼굴은 세상 모두를 가진듯 행복해보이십니다.

회식날 우리 멤버들에게 진창 뜯기시고 난 후 형수님에게 카드를 압수당하신이후로
이젠 반장님에게 그 맛있는 횟간(소의 생간 - 경상도에선 이렇게 말 하던데 정확한 용어는 잘
모르겠습니다.)을 얻어먹어볼 기회가 생기질 않더군요.
지갑 사정을 훤히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분 지갑 보면 딸랑 3만원에 천원짜리 몇장뿐입니다.
그나마 그 만원짜리 석장은 지갑속에서 얼마나 묵었는지 땀이 차고 습기가 차면서
거의 누더기 지경이 되어 버렸지요.

혹시 그 3만원의 사정을 모르는 초짜 멤버가 그돈 우려내 먹으려 했다간
탈의실에서 듣던 그 기나긴 사연을 반장님 얼굴에 가득 담은 행복감과 함께
한참을 또 들어야 합니다.

힘들거나 위험한일 제대로 일이 되지 않아 짜증 낼때도 많지만
옷을 갈아입으면서, 그리고 지갑을 만져보면서 이분은 그런 모든걸 잊어버리고 이겨내버리십니다.


이분에겐
지갑에 딸랑 3만 몇천원이 들어있더라도 아마
세상에서 제일 부자인듯 싶습니다.
3만원이 그분의 사는 이유이고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삶의 당위인것이고
보람이 된 것이지요.




혹시 지갑에 현찰 대신 채울수 있는 그 무언가를
당신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혹시 지갑에 현찰이 없다고 해서 왠지 불안해지고 초조한지는
않으신지요.

돈대신 채우면 훨씬 더 가치 있는 것들을 이미 포기하면서
살고 계시진 않은지요.